한끼의 식사기금

보도자료

<평화방송>[인터뷰] 윤경일

2016.03.28

* 윤경일 (사) 한 끼의 식사기금 이사장, PBC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 인터뷰

[주요 발언]
"한 끼의 식사기금, 2004년 11월에 만들어져"
"한 끼의 식사기금, 부산에 본부 해외 3개국에 지부 두고 있어"
"도움의 우선 순위는 거리에 의해 좌우되지 않아"
"방글라데시에 비소 여과할 수 있는 우물 설치"
"캄보디아 에이즈 환자 치료 위해 영양식 지원 집중"
"에티오피아 미혼모들 처참한 실상...미혼모 지원 프로그램 시행"
"구호활동 중 가장 힘든 점은 가족의 아픔"

[발언 전문]
부산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사단법인 ‘한끼의 식사기금’의 윤경일 이사장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지를 오가며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을 담은 책을 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이 있습니다> 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윤경일 이사장 연결해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윤경일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현재 부산 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으로, 또 칼럼니스트로로 활동하고 계시다는데, 국제 구호 활동까지 무척 바쁘시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사는 세상입니다. 저 역시 아침에는 병원 출근해서 진료 후에 퇴근 시간되면 다시 국제구호단체 사무국으로 출근을 합니다.
거기서 국제구호 관련 업무를 보고 귀가를 하니까 하루에 두번 출퇴근 하는 셈이에요.
거기다가 가끔은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도 써야하니까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바쁘게 살고 계시는데 ‘한끼의 식사기금’이 창립된 게 언제인가요?
▶2004년 11월입니다. 그러니까 언 12년이 지났네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국제구호 활동 단체를 만들 생각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진료 봉사 활동을 했었는데 그러나 세상이 혼자보다 같이 하는 일을 하는 분위기가 되어가서 저 역시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서 정신질환자 들의 진료 봉사를 했었는데 그 곳에 환자들의 고통받는 삶에 대해서 공감도 할 기회도 있었고 그리고 몇년간 외국인 노동자들 무료 진료소 활동도 했었습니다.
그 분들이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그렇지만 미래 행복을 꿈꾸면서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을 봤고 그 중에서 아픈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진료소니까 당연히..
그 사람들의 아픔을 나누고 애환이랄까요? 애환을 통해서 좀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그런 느낌들이 자라났었죠.


▷제가 얼핏 책을 보니까 가톨릭 평신도 영성 단체인 포콜라레 연례행사인 마리아폴리에 참석해서 어떤 영감, 강렬한 열망을 느끼셨다고 하던데 어떤 것이었어요?
▶그 이야기가 관련돼서 앞서서.. 제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 학교를 유엔에서 짓게 됐는데 거기에 일정기간 지원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약속 시간을 다 지키지 못하고 중단된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어요.
그 후에 2004년도입니다. 이런 마리아폴리가 열렸는데 당시 원격 입양을 제안받게 됐는데 거기에서 제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 학교 지원도 있고 해서 그 쪽 아이들과 결연을 맺고 싶었죠.
포콜라레 안에서는 그곳과는 연결이 안됐어요. 그 순간 돌아섰죠. 그런데 그때부터 제 마음 속에서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어떤 열망, 열망이라는 게 뭐냐면 지구촌에 작으나마 정성껏 도움을 주면 누군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겠는데..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그래서 그 열망이 식지않고 자꾸자꾸 커져서 결국 그 해 12월에 한끼의 식사기금을 하게 됐죠.


▷포콜라레는 `서로간의 사랑과 모든 이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영성단체이기도 하고요.
▶네.


▷‘한끼의 식사기금’은 현재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저희는 본부가 부산 해운대에 있고요. 해외에 세 곳,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세 곳에 현지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지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 국가에서는 현지 NGO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구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현재 아시아 아프키라 5개국에서 연중 상시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어요.
그 중에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는 재난 지역인데 거기는 우리 포콜라레, 남자 포콜라레가 족자카르타에 있는데 거기에 팀들과 손을 잡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 종종 받으실 것 같아서 여쭤보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불우한 이웃들이 많은데, 왜 그리 잘 알지도 못하는 곳을 도우려 하시는지.. 그 멀고 위험한 오지까지 손수 찾아가면서 왜 그래야하는데 이런 질문 받으시죠?
▶예. 초창기에 많이 받았어요.


▷뭐라고 답변하세요?
▶어떻게 답을 하라고 하니까 마치 제가 모범 답안을 만든 것 같은.. 반복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제 생각에 첫번째는 우리 주변에 사는 가난한 이웃이 있으면 당연히 봐야겠죠.
그러나 멀리 떨어져있는 곳에서 간절히 도움의 손길을 바란다면 그게 누군가는 도와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도움의 우선순위라는 게 거리에 가깝고 먼 곳이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생각으로는 나라마다 빈부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고 선진국들도 빈부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국의 어려운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사고 방식이 존재하고 따라서 누군가는 국내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가난한 지구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기근이나 홍수로 인해 긴급 식량 지원을 수행해야 할 때 자국에 남아도는 식량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방식에 대해 윤 이사장께선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하셨더군요. 왜 그런 건가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빠르게 제공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근데 문제는 그와 관련해서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항이 있는데 그걸 피해야하는데 가령 자국에 남아도는 식량을 배로 수송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서 보내게 되면 몇 달이 흘러가죠.
그렇다보면 긴급상황이 대부분 종료되는 시점이 되는데 현지에서는 새로운 농사를 가꿔서 수확할 때가 되죠.
그런데 그 상황에서 외국에 대량의 무상 원조 식량이 지원이 되면 산지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상처난 부위에 소금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거기다가 또 멀리서부터 수혜국으로 식량을 실어가는 자체가 낭비로 생각하는데 많은 수송비가 들지 않겠습니까?
수송비를 현지에서 구입해서 배분해준다면 훨씬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죠.


▷엊그제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었는데요. 윤 이사장께서는 방글라데시나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등 이들 지역의 물 부족 문제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직접 맞닥뜨리셨잖아요. 특히 방글라데시 같은 곳에선 비소 오염 방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고요. 이 물부족 문제와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겁니까?
▶방글라데시 자체는 저지대가 돼서 늘 홍수에 피해에 시달리는 국가 중 한 나라입니다. 그러면서 여러 지역에 토양의 문제에요. 토양 속에 비소라는 물질이 많아서..


▷중금속의 일종이죠?
▶비소는 보통 텔레비전 사극 같은 것을 보면 역모를 꿰한 신하에게 사약을 내리면 죽고 하는 그 장면을 주면 그게 주요 성분이 비소이거든요. 극약이죠.
근데 비소는 아무리 물을 끓여도 제거가 되지 않아요.
결국 걸러내는 여과 장치를 설치해야하는데 가장 오염 농도가 높은.. 여러개의 비소 오염 제거 필터를 설치한 우물을 저희가 많이 설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설치된 우물은 색깔을 달리해서 이 물은 깨끗한 물이다라는 표시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유독 동남아 국가 가운데 캄보디아가 상대적으로 에이즈 환자가 많다고 하던데요. 윤 이사장께선 에이즈 치료에 앞서 영양식을 지원하는 일에 더 신경을 썼다면서요.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건가요?
▶에이즈가 아주 치명적인 질병으로 알고 계시지만 그런데 에이즈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재가 개발이 되면서 이 치명적인 질병도 이제 그렇지 않은 개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만성 질환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데 그러나 여전히 개발도상국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재 효과는 좋으나 인체 면역이 떨어지면 약제가 갖고 있는 부작용이 강해요. 따라서 독성때문에 오히려 질병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이즈 환자에게 영양이 풍부한 식사가 꼭 제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저희가 씨엠립쪽에 가난한 환자 쉼터라든지 병원 인근에 있는 환자들에게 직접 영양식을 제공했었고 시골 오지 마을에서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텃밭 가꾸기 등 이런 프로그램으로 그들의 영양 관리를 도왔죠.


▷그리고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선 미혼모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미혼모 가정과 결연을 맺고 후원도 해 오신 걸로 아는데요. 에티오피아 미혼모들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저도 개인적으로 쌍둥이 두 딸을 둔 미혼모와 가정 결연을 맺고 한동안 지원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많은 젊은 여성들이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시골에서 무작정 아디스아바바로 상경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려주는 일자리는 거의 없고요. 그렇다보니까 길거리에서 배회하다가 혹은 남의 집 가정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여러 남성에 의해서 성관계를 맺고 임신을 하게 되죠.
수중에 돈은 없고 늘 배는 고프고 이들을 보살펴 줄 곳도 없고 굉장히 처참한 상황에 놓인 경우를 많이 봤었어요.
저희 단체에서는 미혼모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NGO 단체들과 연대를 해서 사업을 현재까지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윤 이사장님 가족들의 건강 문제로 어려움도 겪으셨는데 그러면서도 이렇게 국제 구호 활동을 하는데는 아무래도 가족들의 응원이 있어야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한끼의 식사기금이 시작된 지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부가 한번도 그동안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연중 주어진 휴가의 거의 대부분을 구호현장에서 보내야하니까 결혼 25주년도 있었는데 제가 올해는 한번 같이 가자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빈말이 되고 했는데 하지만 저희 아내 율리아나는 그래도 늘 묵묵이 저를 성원해주고 했는데요.
그래서 제가 가장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어떤 오지에 여러가지 고생스러움, 아찔한 순간 이런게 아니고 가족의 아픔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아내에게도 2년 전에 유방암이 찾아왔었습니다. 정말 힘들었는데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도 하고 그런 과정을 겪었는데 제가 잊을 수 없는 것은 한끼의 식시기금 창립 10주년 자선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 후유증이 채 끝나기도 전인데도 저희 율리아나가 직접 무대에 올라가서 사회를 보는 그런 저력도 보여줬는데요.
그 정도면 저희 한끼의 식사기금 사랑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내 분의 세례명이 율리아나시군요.
▶네.


▷이웃사랑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지만 실천이 참 부족한 우리인데...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이 있습니다`, 이 책이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처럼 사랑의 죽비처럼 나태하게 만드는 우리 잠든 의식을 일깨우고 있는 것 같네요.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국제구호단체 사단법인 ‘한끼의 식사기금’ 윤경일 이사장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PBC 윤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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